도서출판 행복에너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이동녕의 ‘나는 행복한 공학자’ 출간

“재밌는 공부 재밌게 하면 그만”

대한민국 경제를 견인한 한평생의 연구열, 그 생생한 기록

2017-07-14 15:29
서울--(뉴스와이어)--도서출판 행복에너지(대표 권선복)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이동녕의 ‘나는 행복한 공학자’를 출간했다.

6·25 전쟁 극복 이후 대한민국은 놀라울 정도의 발전을 거쳤다. 선진국들의 구호가 있어야 간신히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던 세계 최빈국이 60여년 만에 세계 12위권의 경제대국이 된 현실은 그야말로 기적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릴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기적이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오직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굶주리지 않는 가족과 이웃을 보기 위해 피와 땀을 아끼지 않으며 모든 걸 바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대한민국의 발전에는 조국의 과학기술을 위해 연구와 개발에 밤낮없이 매진한 과·공학자들의 열정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도서출판 행복에너지가 출간한 책 ‘나는 행복한 공학자’는 평생을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연구에만 매진하여 많은 학문적 성과를 얻어냄은 물론 걸음마 수준에 불과했던 한국의 재료공학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에 일조한 서울대학교 재료공학과 이동녕 명예교수가 걸어온 인생 여정을 담고 있다.

특히 ‘유학’이란 단어조차 생소했던 1960년대 중반, 가난한 집안 사정 등으로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변의 만류도 두려워하지 않고 달랑 32달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모습은 인생에 있어 도전과 역경의 극복이라는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미국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새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잘사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잊지 않았으며 조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자마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귀국한 저자의 행보다.

또한 이동녕 명예교수와 함께 대한민국 산학협력의 롤 모델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일진그룹 허진규 회장의 이야기 역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이동녕 명예교수가 그러했듯이 허진규 회장 역시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고 꺼려하지만,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을 찾아서 해보자”는 소명의식을 갖고 항상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도전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정년퇴직 후에도 변함없이 서울대학교 신소재연구소에 출퇴근하며 학자로서 연구열을 불사르고 있는 이동녕 명예교수는 이렇게 수많은 역경과 고뇌를 극복해낸 방법에 대해 “나는 촌놈이며 촌놈은 촌놈 방식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소박하게 이야기한다. 부와 명예보다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제자들을 키워내고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에 이바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인생철학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어떤 성공 신화보다 그의 소박한 말이 가슴에 더 닿는 이유는 그 속에서 느껴지는 소박함과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이 책 ‘나는 행복한 공학자’가 오늘도 미래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땀 흘리는 과·공학도들뿐만 아니라 시련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잃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줄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저자 이동녕 소개

학력
1971년 밴더빌트 대학교 대학원 재료공학 박사
1967년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 금속공학 석사
1966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금속공학 석사

경력
2010년~현재 서울대학교 신소재공동연구소 책임연구원
2004년~현재 한국공학한림원 명예회원
2003년~현재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명예교수
1999년 대한금속학회 회장
1994년 한국소성가공학회 회장
1988~1994년 서울대학교 신소재공동연구소 소장
1984~2003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재료공학과 교수

상벌
2010년 자랑스러운 금속동문상(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금속동창회)
2009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상
2003년 THERMEC’2003 Distinguished Award
2002년 대한민국 근정포장
2001년 호암재단 호암상(湖巖賞) 공학상, 한국소성가공학회 공로상
1998년 일진그룹창립 30주년 특별상
1994년 20년 근속 공로 표창

출판
저서 22권 / 국내학술지 논문 110편 / 국제학술지 논문 224편 / 특허 10건 발명 / 국내학술회의 논문집 71편 / 국제학술회의 발표논문 178편 / 기타 14편 / 연구보고서 115편

목차

서문 … 004
추천사 … 007

Chapter 1
내 고향 함안 … 016 |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주신 부모님 … 023
6·25와 선생님… 029 | 촌놈의 뚝심으로 … 034
공무원보다는 학자 … 039 | 눈물 어린 돈뭉치… 044

Chapter 2
양변기와 바나나… 050 | 전차와 창경원 … 055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 061 | 국방과학연구소 … 070
극빈자가 된 식구들 … 075 | 공부에 미치다… 081

Chapter 3
32달러가 내가 가진 전부… 086 | 죽을 고비를 넘기다 … 091
남부의 하버드, 밴더빌트 대학교… 095 | 가난한 조국을 위하여 … 100
귀국을 감행하다 … 105 | KIST 연구원이 되다… 108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해낸 동복강선 … 114

Chapter 4
40여 년 교수생활의 첫발을 떼다 … 120
스승으로서의 보람과 기쁨… 125 |잊지 못할 제자들 … 131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기증 연구동 ‘신소재공동연구소’ … 136
진정한 산학협동이란 … 143

Chapter 5
나의 든든한 지원자, 아내!… 148 | 부전자전 … 154
평생의 한 … 158 | 학자로서의 인생 2막… 163
언제나 논문 집필 중 … 169 |정년 후에 깨달은 2가지 … 176

책을 마치며 … 181

[부록]
저서(Text Books) … 186
장(Book Chapters and Encyclopedia Entry) … 188
학술지 논문(Journal Articles) … 189
국제학회 논문집 논문(International Conference Proceedings) … 235
국내학술회의 논문집(Korean Conference Proceedings) … 273
특허(Patents)… 280
연구보고서(Research Reports) … 282
학위논문 지도 … 288

출간후기 … 295

본문 미리보기

서문

노벨평화상 수상자 마틴 루터 킹은 “누구나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누구나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평생을 공부에만 빠져 산 사람이라서 전공분야를 벗어난 글을 써본 경험이 거의 없다. 하다못해 지금도 제자로부터 주례 부탁을 받게 되면 2~3분 낭독 분량의 원고를 쓰기 위해 여러 시간을 소비해야 할 정도로 글재주가 없다. 더욱이 나 자신이 그렇게 기구한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고, 사람들의 특별한 관심의 대상도 못 되는데 내 글이 무슨 흥밋거리가 된단 말인가. 이 때문에 내 이름을 내건 자전적 에세이를 출간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정년퇴임은 했어도 현재까지 서울대학교 신소재 공동연구소로 거의 매일 출근하여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보잘것없는 얘기를 늘어놓는 것은 낯간지러운 일이고 또 앞으로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책을 출간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마틴 루터 킹의 말처럼 누구나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고, 작은 것이라도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또한 내 몫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무엇보다 부끄럽지만 과장하지 않고 진솔하게 써 내려간 나의 자전적 이야기들을 통해 어려운 환경에 처한 학생들, 특히 나처럼 시골에서 태어나 서울 구경 한 번 제대로 못 해 본 가난한 학생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고 싶었다. 함안 촌놈인 내가 맨손으로 이루어 낸 것처럼, 그들도 자신의 자리에서 불평하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얼마든지 나처럼, 아니 나 이상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 책을 쓰면서 새삼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어린 시절, 부모님의 끝없는 사랑, 어려웠던 학창시절, 조국에 대한 사랑 등이 강하게 느껴졌다. 나는 우리나라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태어나 유년기와 청장년기를 보냈다. 함안 촌놈인 내가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게 되고, 달랑 32달러만 가지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었다. 그리고 가난한 조국을 위해 귀국을 감행하여 KIST와 서울대학교에 몸담게 되었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 교수로 정년퇴임할 때까지 나는 공부에 미쳐 살았고, 적어도 내 분야에서만큼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 그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내가 쓴 논문들이 그 방증이다.

지난날들을 찬찬히 되돌아보니 신기하게도 내 의지대로 된 것보다는 불가항력적으로 된 것이 더 많았다.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내 뒤에서 코치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위기가 어느새 기회로 변해 있었다. 마치 내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게끔 언제나 나를 지켜주시고 돌봐주시는 듯했다. 이런 느낌은 나이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경험한 일들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저 신비롭고 기적의 연속 같다. 성경에 기적이란 말이 더러 나오는데, 거기에 나오는 기적이나 내가 경험한 기적이나 별로 다를 게 없다고 생각될 정도이다.

시련은 나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행복한 학자로서의 내 삶 또한 방해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내게 시련을 이겨낼 특별한 무기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남들과 조금 다른 것이 있었다면, 스스로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나는 오히려 이것 때문에 더 좋아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즉 모든 사물을 긍정적 시각으로 바라본 것이다. 꿈이 있는 사람은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어려움이 닥쳐도 기꺼이 과정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공부가, 그리고 그 속에서 스스로 이루어 내는 소소한 성취감들이 나의 꿈인 동시에 행복이었다.

아무쪼록 이 땅의 젊은이들이 각자의 꿈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데 이 책 ‘나는 행복한 공학자’가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된다면, 부끄러움을 무릅쓴 필자에게는 그보다 큰 보람도 없을 것이다. 시대가 어지러울수록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 그리고 긍정과 의지야말로 행복한 성공의 출발점임을 우리 모두 꼭 기억하기 바란다.

2017년 여름 이동녕

추천사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청빈하고 기술개발에 몰두하는 심지 곧은 사람. 이동녕 교수는 그런 사람이다. 한평생 기술 연구에 헌신한 그가 자서전을 낼 예정이니 추천사를 부탁한다는 말에 흔쾌히 승낙했다.

이동녕 교수와의 인연은 40여 년 전인 19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동녕 교수의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 동기 소개로 그를 알게 됐다. 처음 만난 30대 중반 연구자의 눈빛과 언행에서 기술개발에 대한 열정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본인의 연구 과제를 꼭 성공시켜 낙후된 국내 산업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신념은 내 가슴에 큰 울림을 주었다. 그 과제가 바로 동복강선이다.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 2년 선배였던 그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귀국해 KIST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다. 미국 유학 시절 미국인 지도교수가 이동녕 교수의 우수함을 인정해 이 교수의 귀국을 강력히 만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자신이 배운 기술과 지식을 고국의 발전을 위해 공헌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귀국했다는 것이다.

동복강선은 그의 신념이 녹아 있는 연구과제다. 쉬운 프로젝트를 마다하고, 당시 국내 큰 전선회사들이 수년간 연구해도 성공하지 못한 과제에 도전장을 낸 것이다. ‘한번 개발하기로 마음먹은 기술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도전하는 그의 모습에 믿음과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노력하는 이동녕 교수와 함께라면 성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당시 회사 자본금과 맞먹는 금액인 3천만 원 투자를 결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학계, 산업계로 각자 몸담은 곳은 달랐지만 그의 집념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회사 경영의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서로의 신뢰 속에 공동 연구개발에 착수한 지 2년, 전 세계 4개국만이 제조하던 동복강선 신기술을 우리 손으로 이루어냈다. 동복강선은 일반 구리선보다 훨씬 강도가 높아 70년대 농어촌 근대화 사업에 큰 역할을 했고, 개발과 동시에 이란에 500만 달러를 수출했다. 기초실험부터 제품화, 수출까지 이루어낸 산학협동의 첫 성공사례인 만큼 동복강선은 나와 이동녕 교수에게 특별한 것이었다. 당시 KIST 홍보동영상 첫머리에 “동복강선 개발에 빛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을 힘주어 말하던 성우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다.

누구보다 산학 협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이동녕 교수의 제안으로 나는 1990년 서울대학교에 ‘신소재공동연구소’를 기증했다. 동복강선 등 산학 협동의 결실로 성장한 일진그룹이 국립대학인 서울대에 최초의 민간 기증 연구동을 기증한 것은 나에게도, 이동녕 교수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 신소재공동연구소를 계기로 산업 신소재 연구가 더욱 활성화되었고, 기업에서 기증한 연구동이 서울대 캠퍼스에 속속 들어서는 효시가 되었다. 이동녕 교수는 고맙게도 연구소에 내 아호를 붙여 ‘덕명기념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나는 이동녕 교수를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 생각한다. 경남 함안 산골 출신인 이 교수와 전북 부안 농촌이 고향인 나는 시골 벽촌 출신이란 면에서 닮은 점이 많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좋은 환경과 훌륭한 연구시설, 좋은 일자리를 마다하고 고국을 위해 귀국한 이 교수와 당시로서는 선망의 대상인 미국유학을 포기하고 열악한 국내공업을 발전시켜야겠다는 열망 속에 국내산업에 뛰어든 나와는 너무나 닮은 점이 많다.

지금도 여든에 가까운 고령임에도 매일같이 자신이 공들인 신소재공동연구소에 출근해 연구를 거듭하는 이 교수를 볼 때마다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존경심이 싹튼다. 이곳에서 제2, 제3의 이동녕 교수 같은 공학자가 배출되고, 노벨상을 수상하는 후배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나는 1960년대 중반 육군본부 병기감실 군 생활 시절, 총포, 탄약, 차량 등 군 장비를 국산화하는 임무를 받아 전국의 산업현장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취약하고 낙후된 국내 산업환경에 큰 충격을 받았다. 유학은 사치라 생각하고, 산업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을 반드시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우리의 힘과 실력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수입에 의존하는 수입상품을 국산화시키는 것이 진정한 엔지니어의 사명이라 생각했다.

1968년 집 앞마당에 흑연 도가니를 걸어두고 직원 두 명과 함께 창업을 했다. 오늘날 말하는 벤처기업이다. 당시 외국에서 전량 수입하던 변전용·배전용 금구류 국산화를 시작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PCB용 일렉포일, 공업용 합성다이아몬드 등 남들이 하지 않는 어려운 소재기술에 도전하고 정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동녕 교수는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낸 집념과 열의를 가진 공학자이다. 이 책 ‘나는 행복한 공학자’에는 그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나는 그의 모습에서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말한 ‘위대한 사람’을 떠올린다. 루스벨트는 “진실로 위대한 사람은 비판하는 사람이 아니다. 일터에서 먼지와 피땀으로 열심히 노력하며, 그 과정에서 무수히 실수하고 실패하는 사람, 의욕과 헌신으로 가치 있는 일에 몸을 바칠 줄도 알고 성공의 기쁨도 아는 사람이 진정 위대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동녕 교수는 진정 위대한 연구가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시간을 아껴가며 연구에 매진했고, 실패를 경험해도 긍정적으로 끝까지 매달렸다. 자신보다 조국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 왔다. 선진국 학자들도 해결하지 못한 산업의 실타래를 풀어냈고, 성공을 토대로 또 다른 연구에 박차를 가하였다.

‘나는 행복한 공학자’를 읽는 모든 분들이, 이동녕 교수처럼 어려움을 이겨내고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위대한 사람이 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이동녕 교수 같은 훌륭한 공학자가 많이 나와 대한민국이 퀀텀점프 하기를 기대해 본다.

출간 후기

뜨거운 애국심과 남다른 뚝심으로 기술강국 대한민국의 발전을 견인해 온 이 시대의 진정한 공학자 이야기

권선복(도서출판 행복에너지 대표이사, 영상고등학교 운영위원장)

6 25전쟁 극복 이후 대한민국의 발전상은 놀라울 정도이다. 세계 최빈국이었던 아시아의 변방국가에서 세계 12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데에는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 노력이 뒷받침되었다고 생각한다. 텔레비전조차 귀하던 그 시절, 오직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 하나로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분들이 있다. 그들 중 빼놓을 수 없는 분들이 공학기술 분야에서 연구에 매진하며 땀 흘렸던 분들이다.

책 ‘나는 행복한 공학자’는 평생을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연구에만 매진하여 그 결과 학계에서 주목받는 연구 성과를 쌓아올린, 이동녕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올곧은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략)

그는 가난한 학창시절에도 좌절하는 대신 긍정적 마음가짐으로 삶을 바라보았고, 실패란 다름 아닌 성공의 진로를 알려주는 나침반임을 가슴속에 새겨두었다. ‘유학’이란 단어조차 생소했던 1960년대 중반 달랑 32달러만 들고 미국으로 떠났던 그가, 가난한 조국에 기여하기 위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와 이루어낸 업적은 실로 눈부시다.

40여 년간 서울대 교수로 재임하며 후학 양성에 힘씀은 물론이고, 산학협동의 롤 모델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오롯이 연구에만 골몰한 결과 대한금속학회학술상, 서울대학교 공대기술상, 한국표면공학회 학술상, 한국소성가공학회 상우학술상, 호암상(공학상), 대한민국 근정포장, 한국과학기술 한림원상 등을 수상했다.

(중략)

어느 위대한 인물의 성공신화보다 그의 소박한 말이 가슴에 더 닿는 이유는 그 속에서 느껴지는 진정성 때문이다.

그는 정년퇴임 이후에도 거의 매일같이 서울대학교 신소재연구소로 출근하여 스승으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으며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촌놈은 촌놈 방식대로 살아간다’는 뚝심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한 걸음씩 전진하여, 대한민국의 국가경제를 일군 진정한 공학자 이동녕 교수. 그의 반듯한 학자로서의 철학을 세상에 알릴 수 있어 무척 영광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언제나 묵묵히 책임을 다하고 있는 분들이 있기에, 지금 여기 우리가 존재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더불어 이동녕 교수님과 함께해 온 든든한 파트너 일진그룹의 허진규 회장님께 힘찬 박수를 보낸다. 그의 도움으로 서울대학교에 신소재공동연구소가 설립될 수 있었으며, 대한민국의 산업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로 초석이 되었다. 허진규 회장님의 노력과 결단이 선구자 역할을 하여 다른 기업들에서도 이와 같이 우리나라 산업발전을 이끌어갈 수 있는 산학연 토대 마련에 기폭제가 된 것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모쪼록 책 ‘나는 행복한 공학자’가 지금 이 순간에도 기술강국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도전과 창조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많은 공학자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길 소망하며, 이 책을 통해 공학자뿐 아니라 시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어 하는 모든 독자 분께 행복과 긍정에너지가 팡팡팡 샘솟길 기원드린다.

웹사이트: http://happybook.or.kr

연락처

도서출판 행복에너지
권선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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